동지다례(冬至茶禮)와 납향제(臘享祭) 수원예다교육원장 강성금 눈 오는 동짓날 밤 [冬至夜雪] 동지가 드는 자시 한밤중(冬至子之半) / 한 자나 깊이 눈이 쌓였네(雪花盈尺深) / 만물을 회복하는 봄기운 넘쳐흐르고(津津回物意) / 천심을 보니 크고 광대하구나(浩浩見天心) / 관문을 닫고 나그네 금하니(關閉爲禁旅) / 양기가 생겨 막 음기를 깨뜨리네(陽生初破陰) / 깊은 시름에 한 선이 더해지니(窮愁添一線) / 동마주를 정히 마실만하구나(?馬正堪斟) * 소세양(蘇世讓,1486~1562),『양곡집』권9「동지야설(冬至夜雪)」에 나오는 이 시는 동지(冬至)의 이치와 여러 상징을 잘 표현하여 널리 인용되고 있다. 동짓날 자정, 천심은 변함없고 만물을 소생시키는 봄기운이 바로 동짓날에서 시작되니 동짓날에는, 관문을 닫고 행상인의 출입을 금지시키며 임금은 지방을 순행하지 않는다. 이는 땅속에서 싹트기 시작하는 지극히 작은 양기(陽氣)를 보전하려는 조심스런 마음에서 발로된 것이다. 그러므로 마유(馬乳)로 만든 동마주(?馬酒)를 기꺼이 마실 만 하다는 내용이다. 섣달에 드는 납향제(臘享祭)의 ‘납일(臘日)’은 동지 후 셋째 미일(未日)로 1년 동안
화령전(華寧殿)과 정조대왕 수원예다교육원장 강성금 수원화성행궁은 정조가 세웠으나 ‘화령전’은 순조가 세운 정조의 영전이다. 화령전은 1800년 6월 28일 정조 서거 이후, 순조 원년 4월 29일 완공하여 정조 어진을 봉안하고 순조 4년에는 화령전에 응당 행해야 할 절목인 ?화령전응행절목(華寧殿應行節目)?을 개정하여 수원 유수로 하여금 사맹삭(四孟朔)과 탄신제(誕辰祭), 납향제(臘享祭)를 정기 제향으로, 그리고 고유제, 이안제, 환안제를 부정기제향으로 올리도록 한 곳이다. 국왕 순조는 화성에 묻힌 선왕 정조를 찾아 갈 때마다(10회) 화령전에 禮를 행함은 물론 순조 12년 9월 22일에는 정조대왕의 회갑(周甲)이어서 친히 작헌례를 행하였고 순조 26년과 28년에는 왕세자가 따라와 아헌례를 행하였으며 이후 헌종 2회, 철종 3회, 고종이 2회로 왕(王)의 친제(親祭)가 17회 이루어진 조선시대 유일한 외방진전이다.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인 서유구(徐有?)가 수원 유수로 재임(헌종2년)하면서 쓴 행정일기 ?화영일록(華營日錄)?에는 “현륭원에는 속절제(설, 한식, 단오, 추석, 동지)를 지냈고 화령전에는 사맹삭, 탄신제, 납
설날 세배다례(歲拜茶禮) 수원화성예다(禮茶)교육원장 강성금 현대 대부분의 국어사전에는 ‘차례(茶禮)’를 <매달 초하룻날과 보름날, 명절날, 조상 생일에 간단히 지내는 낮 제사>라 했고, ‘삼명절(三名節)’은 <임금의 탄신일, 정월 초하루, 동지>라 했으며 『조선왕조실록』의 ‘육명일(六名日: 설, 한식, 단오, 추석, 동지, 납일)’은 선대왕의 영정이 모셔진 영희전에 ‘다례’를 올리도록 기록하였다. 실록에는 실제로 차(茶)가 놓여진 자리를 표시한 진설도의 ‘차례’가 천삼백 회 이상 올려 진 것으로 나타난다. 설은 왜 설이라고 했는지 그 유래가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첫째, 삼간다(아무 탈 없이 지내고 싶어 삼가 한다). 둘째, 섧다(해가 지남에 따라 늙어가는 처지가 서글퍼 서럽다). 셋째, 낯설다(새로운 시간주기에 익숙하지 않다). 넷째, 서다(한해가 시작되는 날이라 하여 해가 서는 날)에서 생겼을 것으로 통용되고 있다. 명절에 지내는 ‘차례’는 ‘제사’와 그 의미가 사
첫인사와 소개 예절 수원화성예다(禮茶)교육원장 강성금 인사는 만나거나 헤어질 때 공경의 뜻으로 나타내는 예(禮)이다. 언제 어디서나 인사는 내가 먼저, 상대를 바라보며, 밝은 표정 큰 목소리로, 정성을 다하여, 상황에 알맞게 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상황에 알맞게 하기란 쉽지 않다. 잘하면 두고두고 멋스러운 이미지로 기억되지만, 엉거주춤 때를 놓치거나 조금 과하여 넘치면 가벼움을 낳는다. 첫인사는 처음 만나는 사람끼리 성명을 통하여 자기를 소개하거나 소개받을 때 하는 일이다. 자기를 처음 소개할 때는 성(姓)만 말하지 않고 이름까지 또박또박 말하되, “안녕하(시·세·셔)요? 만나서 반가워(요)” 보다는, “안녕하십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가 좋다. ‘시·세·셔·요’ 보다는 ‘까·다’가 정중하기 때문이다. 물론 말끝을 살짝 올려 물방울이 튕기듯이, 신선하게 마무리하면 더욱 좋겠다. 이렇게 정중하게 자기소개를 하는데 대뜸 나이를 묻는다거나 비밀을 캐듯 대답하기 거북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