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문(千字文)이야기


 

천자문(千字文)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그러나 일천자나 되는 한자를 다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언 절구의 한시(漢詩)로 이루어진 천자문은 중국 남북조시대 양무제 때의 학자인 '주흥사'(周興嗣, 470~521)가 하룻밤사이에 지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글자가 하나도 겹치지 않도록 하다 보니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고 하여 백발문(白髮文)으로도 알려져있다.

우리나라에는 고조선시대에 유입되어 이두, 향찰, 구결 등의 과정을 거치며 세종대왕의 한글창제와 지금의 디지털 시대에까지 살아남은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다.

국립국어원이 간행한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51만여 개의 낱말 중 한자어는 29만여 개로 57%이고, 국립국어연구원이 2002년 발표한 '현대 국어 사용 빈도 조사'를 보면 우리말의 낱말 사용 비율은 토박이말이 54%, 한자어 35%, 외래어가 2%였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천자문에 있는 글자를 교육용 한자(1800)와 비교해보면 750자만이 겹친다. 결국 천자문의 1/4은 쓸 일이 없는 불용문자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우리말의 절반이 넘는 한자를 버릴 수는 없다는 점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렇듯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할 공동 운명체 라면 어렵게만 생각하지 말고 즐기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한자 능력검정 시험을 볼 것도 아니지만 우리말의 어원이 되는 한자어의 정확한 의미와 뉘앙스를 알고 쓰는 것이 오히려 재미있는 일상생활을 만들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디지털시대답게 휴대전화의 어플 하나로 통·번역을 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옛날 어르신들이 중국사람과 필담(筆談)으로 의사소통을 했듯이 글자의 정확한 뜻을 아는 것도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일 것이다.

 

그러면 우선 누구나가 다 아는 천자문 첫 8글자를 살펴보자.

사람들이 장난스럽게 읊어대는 "하늘 천, 따지, 가마솥에 누릉지 ~" 하는 천자문의 첫 문장은 하늘 천, 따지, 검을 현, 누루 황. 집 우. 집 주, 넓을 홍. 거칠 황으로 시작한다.

 

天 地 玄 黃 宇 宙 洪 荒

이 문장은 하늘의 색은 검고 땅의 색은 누렇다.” “공간과 시간은 광대해서 넓고도 아득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암기 공부의 단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하늘 천, 땅 지는 누구나 아는 의미의 글자지만 검을 현의 의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칠흑(漆黑) 같은 검은 색과는 다르다.

 

한자를 풀이한 사전에 해당하는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따르면 () - 유원(幽遠)” 이라고 되어있는데 이는 그윽하고 아득하다라는 뜻으로 검으면서 적색을 띄는 것을 이라한다.” 고 풀이하고 있다.

얼마나 깊은 뜻인가. 하늘을 생각하고 대하는 옛날 사람의 생각을 알수 있는 철학적이면서 감성적인 표현이다.

 

우주(宇宙)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우주라는 말을 들으면 달나라, 화성, 토성하는 SPACE를 생각하지 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집 우, 집 주로 읽으면서 왜 집이 넓고 거칠다라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집이 넓고 거칠다라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

회남자(淮南子) 제속훈(齊俗訓)에는 우주(宇宙)의 우()는 상하사방(上下四方)의 공간을 말하고 는 현재, 과거, 미래의 시간(往古來今)을 말한다고 풀이하고 있다. 즉 그냥 이 아니라 공간과 시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 ()는 하늘이 만물(萬物)을 덮고있는 형태이므로 집의 지붕과 같다 라는 의미이고 주()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영원한 시간이라는 뜻이다.

 

홍황(洪荒)의 홍()은 크다()라는 뜻을, ()은 거친 모양새, 망막(茫漠)하고 넓은 모양을 말하며 지극히 먼 곳으로 전인미답(前人未踏)의 땅을 의미한다.

고대 중국의 전설속에 나오는 신농(神農)이 천지를 걷는데 동서 구십만 리, 남북 팔십만 리이며 동해(東海)에서 서해(西海)까지는 이만 팔천 리, 남해에서 북해까지는 이만 육천 리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요즘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는 정리되지 않은 카오스(CAOS)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다.

 

이렇듯 뜻글자인 한자는 글자 하나하나가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디지털이 모든 학문을 흡수하는 지금처럼 학문이 세분화되지 않았던 옛날에 사서삼경(四書三經)이라는 7종류의 책안에서 모든 철학적인 질문과 해답을 찾아냈던 선인들의 지혜를 새롭게 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