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향 의원, “윤미향의 진심과 나비의 꿈을 대중들과 함께 나눌 수밖에 없다."


"야권 총단결해서 윤석열 정권 심판하는 총선 만들어야”
" ‘윤미향과 나비의 꿈’을 힘차게 펼치기 위한 출정식 하는 마음으로 책 출간"
"수원에 평화의 소녀상, 바로 해방의 미소, 평화의 미소"

 

(한국글로벌뉴스 -박소연 기자) 윤미향 국회의원(무소속)의 삶을 지탱하는 화두는 ‘나비의 꿈’실현이다. 윤미향 의원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 평화운동을 펴던 활동가 시절 할머니들의 고난하고, 치열했던 삶을 ‘나비’에 견줘 설명하곤 했다.

 

할머니들은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 과정에서 사회적 터부와 죄책감이라는 벽(고치)를 스스로 깨뜨리고 평화인권활동가(나비)로서 당당하게 해방의 날갯짓을 하며 살았다.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인권활동가로 윤미향은 ‘마녀사냥’의 표적이 됐고, 국회의원이 된 뒤에도 온갖 공격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을 윤미향 의원은 ‘융단 폭격’이라고 표현했다.

 

윤 의원은 “언론과 검찰이 저에 대해서 프레임으로 짜놓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웠다’, ‘남편에게 일감을 몰아주고 부모를 이용해서 횡령을 했다’ 등 등의 마녀사냥이 폭풍우처럼 휩쓸고 갔고, 말할 수 없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런 보도들이 펴져 나가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무엇보다도 검찰의 수사단계에서부터 이미 무혐의로 발표되거나 재판과정에서도 무죄로 판정된 것도 수두룩하고, 증인들을 통해서 무죄로 입증됐으나 기자들을 다뤄주지 않았다”며 “기자들은 윤미향을 마녀화, 악마화하는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이라고 암담한 언론 현실을 지적했다.

 

윤 의원은 지난해 11월 ‘윤미향과 나비의 꿈’이란 책을 펴내고 출판기념회도 열었다. 책‘윤미향과 나비의 꿈’은 검찰과 수구언론의 공격으로 30년 동안 펼쳐왔던‘나비의 꿈’과 윤미향의 삶이 짓뭉개진 상황에서 피어올린 희망의 몸부림이었다.

 

특히 윤미향 의원은 “정말 존엄감 높게 본인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운동해 왔던 피해자들의 삶이 윤미향에게 끌려다닌 비주체적인 할머니로 낙인찍히고 내팽개쳐졌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30년 삶을 다시 높이 올려드릴 필요가 있다, 그게 윤미향의 몫이라고 생각해 ‘윤미향과 나비의 꿈’을 쓰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한반도 평화와 전쟁 반대에 대한 의지도 분명히 했다. 윤 의원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절규 중에 지금도 가슴속에 쟁쟁하게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며 “늘 한결같이 결론처럼 하시는 말씀이 ‘전쟁이 있어서는 안돼’, ‘전쟁이 나면 우리와 같은 피해자가 생길 수밖에 없어’하는 말씀이었다”고 강조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와 관련 윤미향 의원은 “야권은 조금 다름을 넘어서서 총단결해서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는 총선을 만들어야 한다”며 “그래야 그나마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켜 세워서 국제사회에서 신망받는 대한민국, 경제적으로 밥상 물가에서도 학교와 일터에서 안심하며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역설했다.

 

매주 토요일 촛불집회 현장에 참여하는 윤 의원은 “저는 촛불집회에 나가서 촛불 시민들에게 너무나 큰 위로와 격려를 받고 있다고 늘 고백을 한다. 정말 감동”이라며 “더 많은 정치인들이 국회의원들이 현장 속에서 시민들의 절규를 듣고 ‘아, 국회의원들이 바로 이런 것을 해야되는 구나’하는 것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저는 검찰과 언론이 지난 3년 동안 저를 공격했듯이 위안부 피해자들을 이용해서 사리사욕을 채우려 했던 사람이 절대 아니다”며 “어떻게 하면 위안부 피해자들이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가해자였던 일본정부에게 사죄와 배상을 받아 낼 수 있을까, 그 하나의 꿈을 가지고 30년을 살아왔다”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끝으로 윤 의원은 “지금까지도 거리에 서서 할머니들과 함께 ‘나비의 꿈’을 꾸고 싶은 것은 제 심장에 남겨주신 할머니들의 용기, 그 희망, 그 꿈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혹시 여러분들도 위안부 피해자들과 함께 손을 잡고 싶다는 분이 계시다면 제가 언제든지 달려가 할머니들의 이야기 전해드리고, 함께 손잡고, 참 해방의 길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홍재언론인협회(회장 윤청신 일자리뉴스 뉴스잡 대표)는 지난 7일 오후 윤미향 의원을 만나, 최근 의정활동의 주요 내용과 책 ‘윤미향과 나비의 꿈’, 한일관계, 한반도 전쟁 위기, 평화의소녀상 지키기, 제22대 총선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래는 윤미향 의원과 홍재언론인협회의 인터뷰 일문일답 전문이다.

 

 2024년 총선 정국으로 어수선한 가운데서도 영해법 등 의욕적인 법안 발의를 하고 있는데 최근 주요 법안 발의를 설명해 달라?

 

“지금 후반기에 농해수위에서 활동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굉장히 많은 업무들을 농해수위 안에서 담당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농림부에 속한 법안을 가장 최근 발의했다.

 

2022년 6월에 한국농수산대학교의 한 학생이 실습현장 농가에서 비료를 배합하는 기계에 빨려들어가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고가 있었다. 그것이 계기가 돼 조사하고 국감장에서 질의하고, 또 자료를 수집해 확인해 보니까, 정말 실습생들에 어떤 안전조치가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습현장에 저임금으로 충당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입법이 제 의무이기 때문에, ‘한국농수산대학교 설치법’을 개정해 학생들에게 최소한의 안전조치가 이뤄진 상태에서 실습현장으로 투여될 수 있도록 하며, 사고가 났을 때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발의했다.

 

또 하나 지난 해부터 저에게 가장 큰 숙제는 일본 자위대가 한미일 군사 연습을 핑계로, 한미일군사동맹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반도에 상륙하는 문제였다. 그런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무엇보다도 일제식민지를 기억하는 분들에게 굉장히 두려운 존재, 악몽의 상징은 히노마루라는 일장기와 다른 하나는 군함에 달고 있던 일본군국주의의 상징 욱일기다. 욱일기 그 깃발을 달고 한국 영해에 들어오는 일이 굉장히 빈번해졌다. 전범기를 표시한 군함 및 선박의 영해 통행을 막는 법을 발의하는 건 바로 윤미향의 몫이라고 생각해 ‘영해 및 접속수역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또 배 위에 어선·선박 위의 김용균법이라고 할 수 있는 어선원들에게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하도록 하는 ‘어선안전조업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제게는 이주노동자들 문제도 큰 숙제인데, 이주노동자의 임금체불을 구제하는 것이 제한적이다. 우리나라에 돈 벌러 왔다가 임금도 받지 못하고 다시 쫓겨나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봐 왔다. 그래서 이주노동자 임금체불 구제법을 발의했다.

 

저에겐 동물복지도 중요한 과제다. 반려견을 집단 생산하거나 경매를 통해 동물학대가 일어나고 있기에 이를 방지하는 동물복지법을 발의했다.

 

저에게는 입법기관으로서 입법을 제대로 해서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국민을 보호하라는 의무가 주어졌기 때문에 단 하루가 제가 남아 있다 하더라도 입법 의무를 성실히 하기 위해서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다.”

 

 

2023년 11월 출판기념회를 통해 책 ‘윤미향과 나비의 꿈’을 소개했는데, 책의 내용은 어떠하고, 책이 독자를 많이 만나고 있는가?

 

“보통 정치인들은 다음 선거에 출마하기 위한 출정식 비슷하게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한다. 그런데 제 입장에서는 좀 다른 책을 출판했다. 책 제목과 표지에 있는 그대로 ‘윤미향과 나비의 꿈’을 힘차게 펼치기 위한 출정식을 하는 마음으로 책을 냈다.

 

제가 국회의원 비례후보가 된 후 일본 우익과 일본정보기관, 한국의 우익과 매체들, 검찰, 언론방송, 보수 유튜버들, 그런 집단들이 우리사회 내에 있다는 걸 몸소 느꼈다. 융단 폭격이 주어졌다.

 

언론과 검찰이 저에 대해서 프레임으로 짜놓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웠다’, ‘남편에게 일감을 몰아주고 부모를 이용해서 횡령을 했다’ 등등의 마녀사냥이 폭풍우처럼 휩쓸고 갔고, 말할 수 없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런 보도들이 펴져 나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제가 3년 동안 의정활동을 해도 약자들과 함께하는 활동을 해도, 제가 국회에 들어온 목적인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과 함께하는 정책을 말하고, 법을 만들고, 시민들과 함께 연대해 목소리를 내고, 직접 일본 시민들과 연대해서 어떻게 하면 국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여론화하고, 국회 정책으로 만들 수 있을까 많은 활동을 해도 기자들은 다뤄주지 않았다. 기자들은 윤미향을 마녀화, 악마화하는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검찰의 수사단계에서부터 이미 무혐의로 발표되거나 재판과정에서도 무죄로 판정된 것도 수두룩하고, 증인들을 통해서 무죄로 입증됐으나 기자들을 다뤄주지 않았다.

 

그 결과 제가 20대 청년부터 30년 동안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을 만나 함께 만들어왔던 ‘나비의 꿈’과 윤미향의 삶도 짓뭉개졌다. 아무리 회복하려고 해도 회복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직접 이제는 윤미향의 진심과 나비의 꿈을 대중들과 함께 나눌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 존엄감 높게 본인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운동해 왔던 피해자들의 삶이 윤미향에게 끌려다닌 비주체적인 할머니로 낙인찍히고 내팽개쳐졌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30년 삶을 다시 높이 올려드릴 필요가 있다, 그게 윤미향의 몫이라고 생각해 ‘윤미향과 나비의 꿈’을 쓰기 시작했다.

 

그 책 속에는 이 일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지난 3년간 어떤 윤미향과 할머니들에게 어떤 아픈 일들이 일어났는지, 그 과정에서 가장 피해자들 곁에서 돕고 헌신했던 쉼터 손영미 소장님이 왜 죽어갔는지 담아내려고 애썼다. 무엇보다도 피해자들은 비주체적인 운동가가 아니었다, 정말로 본인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헌신하고, 적극적이고 주체적이고 세계의 영웅으로 불릴 만큼 그런 멋진 활동가였다는 걸 책에 담았다.

 

그동안은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 활동을 하면서는 피해자 중심의 이야기를 썼는데, 이번 책 ‘윤미향과 나비의 꿈’에는 제 이야기도 좀 담았다. 윤미향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그 윤미향의 꿈이 지금도 계속 피해자들의 꿈을 가슴에 담고 살게 하고 있고, 지금도 늘 거리에 서서 할머니들의 손을 잡고 일본정부에게 사죄하라, 배상하라 외치는 그런 그 꿈을 꾸고 있다. 그 꿈을 꼭 이루고 싶다는 얘기를 책에 담아냈다.

 

아시다시피 저는 정치적인 유망주도 아니고, 팬들을 몰고 다니는 셀럽도 아니다. 그리고 3년 동안 워낙 큰 공격을 당하다 보니까, 저에게는 ‘악마화’된 프레임이 있기 때문에 책이 잘 나가지 않고 있다. 고민이다. 책이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윤미향의 진심, 참 해방을 나비의 꿈이 더 많이 알려져 연대를 만들어 낼 수 있을 텐데, 고민이다. 홍재언론인협회에서 도와주시다면, 수원지역, 화성지역, 경기지역에 사는 분들이 윤미향의 진심, 나비의 꿈을 알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부탁드린다.”

 

지난달 20일엔 윤 의원이 시민단체와 함께 국회에서 ‘전쟁 반대, 오직 평화’라는 제목으로 범국민.해외동포 전쟁반대 평화선언대회를 가졌다. 어떤 의미가 있나?

 

“국내외 안보전문가들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에 이어 한반도를 위기 상황으로 진단하고 있다. 북과 남의 해안포 사격 등으로 한반도 군사적 긴장은 고조되고 있고, 3월에는 한미연합연습과 북의 동계군사훈련이 동시에 진행될 예정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2월 20일 국회에서 한반도의 전쟁 위기 극복과 화해와 협력, 평화주의 원칙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범국민, 해외동포들이 직접행동으로 전쟁반대 평화선언대회를 연 것이다. 한반도 공멸이 아닌 공존의 길을 찾기 위해서 평화행동에 나선 것이다.

 

윤석열 정부에게 전쟁 위기를 부르는 전쟁연습을 즉각 중단하고, 평화를 위해 상호 신뢰 구축 조치들을 이행해 신뢰와 협력을 통한 외교적 노력에 나서야 함을 촉구했다.

 

저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절규 중에 지금도 가슴속에 쟁쟁하게 남아 있는 것이 있다. 그 아픈 증언을 하시고 나서도, 늘 ‘할머니 소원이 뭐예요?’라고 마지막으로 여쭈면, 물론‘사죄와 배상을 받고 싶다’는 말씀도 하셨지만, 늘 한결같이 결론처럼 하시는 말씀이 ‘전쟁이 있어서는 안돼’, ‘전쟁이 나면 우리와 같은 피해자가 생길 수밖에 없어’하는 말씀이었다.

 

저를 가장 부끄럽게 만들었던 말씀은 김학순 할머니께서 1991년 8월 14일 기자들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신 뒤 수요시위에 나오셔서 한 말씀이었다. 정말 피맺힌 절규였다. 마이크를 잡고‘한국여성들 정신 차리시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우리와 같이 또 당합니다’하는 거였다. 지금 윤석열 정부 아래서 한반도에 불어닥치고 있는 전쟁 분위기, 평화 위협을 마치 예견이라도 한 것 같다.

 

그 말씀는 우리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일본이 다시 한반도에 올 것이고,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면 또 우리가 겪었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그 아픔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였다.

 

지금 윤석열 정부 들어서서 한반도에 그런 전쟁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현재 남북의 대화가 일체 중단되고, 9.19 군사합의마저 무력화된 상황에서 상대를 자극하는 한미, 한미일 군사적 행동은 한반도를 전쟁 위기로 몰아갈 수 있다.

 

작년에 한미일 전쟁 연습을 하는 군사훈련이 하늘에서 바다에서 땅에서 계속됐다. 올해는 새해 첫날부터 정말 위협에 가까울 정도로 군사연습이 시작됐다.

 

또 3월 4일부터 14일까지 11일동안 아주 강력한 군사연습이 진행됐고, 4월에도 예정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에서도 그동안은 남측을 민족의 하나로 통일해 가야되는 상대로 ‘우리민족끼리’라는 기치를 내걸고 기다리고 함께 하자는 상황이었는데, 윤석열 정부 들어서서 계속되는 전쟁의 분위기, 군사훈련 때문에 지금은 적국으로 간주하는 위험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우려하던 또다시 전쟁이 나는 상황이 예견되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불어닥치고 있는 전쟁 분위기를 막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국회의원들이 나서서 윤석열 정부에게 한반도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한미일군사연습을 중단하라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봤다.

 

그런 목소리가 21대 국회에서 별로 없었다. 제가 한미일군사연습을 중단하고 평화를 만들자는 기자회견을 제의했을 때도 호응하는 의원들이 별로 없었다. 그런 목소리를 내면, 바로 보수우익 또는 언론의 공격을 받고, 표를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한 발짝 앞으로 나서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우려했었다.

 

그래서 이것은 주권자인 시민들이 국회를 움직이고 정치를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그동안 통일과 평화를 위해 활동해 왔던 단체들에게 그런 기자회견과 토론회를 제의했고, 선뜻 수 많은 단체들, 또 천여 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특히 제외동포들도 함께 ‘우리는 전쟁을 반대한다, 한반도의 남북 적대를 거부한다. 오직 한반도에는 평화만이 와야 한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한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기자회견이 끝이 아니고, 앞으로도 한반도의 평화를 이룰 때까지, 한반도의 전쟁의 불씨를 없애고, 휴전이 아닌 평화협정이 체결되는 그 날까지 계속해서 시민들과 함께 연대하면서 제 의무를 다할 생각이다.”

 

 일제 식민지와 전쟁피해자 일본군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도 평소 전쟁반대 목소리를 높인 것으로 알고 있다. 설명한다면?

 

“전쟁의 가장 한복판에서 피해받으셨던 분들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셨다. 그래서 전쟁의 분위기가 한국뿐 아니라, 세계 어디에 생겨도 늘 앞장서서 전쟁 반대 목소리를 내셨다. 예를 들어, 이라크 전쟁이 났을 때 거리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이 땅에 그 누구도 이런 전쟁을 해야되는 사람은 없다’, ‘그 누구도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 ‘어떤 명분도 전쟁을 미화시킬 수 없다’라는 목소리를 내기도 하셨다.

 

그리고 베트남전쟁에서 피해를 입은 베트남 시민들을 위해 한국군이 베트남전쟁 때 민간인 학살과 성폭력 범죄 피해를 입힌 것에 대해서도 ‘한국 국민으로서 사죄’하기도 했다. 그런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분들의 경험에서 직접 전쟁이 사람의 생명을 지구촌의 평화를 어떻게 깨뜨리는지 너무나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 목소리는 지금 여전히 제 심장 속에 제 과제로, 제 사명으로 남아 있다. 김학순 할머니, 김복동 할머니가 지금 살아계신다면 아마 용산 대통령실 바로 앞에 서서 외치셨을 것 같다. ‘전쟁분위기 만들지 말고 군사훈련 하지 말라’고.”

 

이번 정권들어서 대일 과거청산 움직임이 과거로 퇴행했고, 강제징용, 독도 등 대단히 굴욕적이라는 우려가 있다. 그 원인과 실상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두 가지 얘기를 하고 싶다. 하나는 윤석열 정부의 기반, 철학, 역사인식 그것이 일제식민지에 협력했던 세력의 지지 위에 있고, 그 뿌리 위에 있기 때문에 지금 윤석열 정부의 대일 과거사에 대한 입장, 인식, 태도, 정책이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라고 본다. 올해 3.1절 기념 메시지에도 그대로 담겼고, 3.1절 기념행사를 하는 무대 모습에서도 3.1절 행사는 누구를 향해 하고 있는 것인가, 일본의 특정 세력들을 위해 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 국민을 향해 하고 있는 것인가 의문을 갖게 했다.

 

그런 것은 자연스럽게 윤석열 정부 들어서서 강화되고 있는 한미일군사동맹과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한일 과거사가 한미일 군사동맹의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우리는 거꾸로 되짚어 봐야 한다. 한일 과거사가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의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 군국준의 과거 역사에 대한 책임 불인정, 사죄와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 계속되는 역사 왜곡이야 말로 한일관계를 방해하고,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미일 동맹체제를 강화해서 인도태평양 전략에 한일관계를 이용하려는 미국 입장에서 봤을 때 과거사가 걸림돌이 되는 거다. 그리고 가해국인 일본이 걸림돌이 된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인권회복을 요구하고 정의를 추구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 그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함께 연대하고 동조하는 국제 양심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걸림돌로 보고, 압력을 넣고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 바로 2015년 12월 28일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했다, 그리고 소녀상을 철거하겠다’고 발표한 ‘2025 위안부 한일합의’다. 그것이 첫 번째 예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 들어서서 일제 강제동원피해자들에게 법적 배상하라고 한 대법원 판결에 대해 제3자 변제 방식이라는 아주 희귀한 방식을 해법으로 내걸었을 때 바로 미국정부와 일본정부가 환영하면서 이제 한미일군사동맹이 강화됐다, 한미일 군사체제가 아주 돈독히 되는 계가가 됐다고 한 것에서 드러났다.

 

결국 과거사가 굴욕적, 굴종적으로 되는 있는 배후에는 한미일 군사동맹이라는 체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윤석열 정부이 들어선 뒤 과거사 해결이 얼마나 거대한 골리앗을 상대하는 것인가, 따라서 더 많은 힘, 더 많은 국제사회와의 연대가 필요한 것이구나 하는 깨닫게 됐고, 과거청산이라는 과제를 넘어서서 한반도의 평화, 미래를 올바르게 구축하는 과제 속에서 한일 관계를 바라봐야 한다는 과제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지역에서도 수원시청 앞 평화의소녀상마저 극우친일세력들이 ‘철거’띠를 두르거나 매월 진행되는 수요문화제도 훼방하고 있다. 서울의 평화로 앞은 더 심각하다. 평화인권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되나?

 

“올해가 수원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진 지 10년째 되는 해다. 10년 전 소녀상이 세워질 대 김복동 할머니, 길원옥 할머니, 안점순 활머니의 얼굴에 활짝 폈던 미소를 잊을 수 가 없다. 그 미소가 바로 해방의 미소, 평화의 미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 수원평화비에 까지 ‘철거’라는 띠를 두르고 갔던 사람, 수원문화제를 방해하는 특정 단체들의 방해 행위가 공권력의 침묵 아래, 버젓이 진행되고 있는 현실,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법이 우리나라에 없다는 게 너무 서글프고 안타깝다. 또 입법기관의 한 사람으로서 그런 법을 만들지 못한 제 책임도 분명하게 느낀다.

 

저는 충분히 지금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생각이 든다. 바로 2015년 한일합의 이후 국제사회가 함께 연대하고 만들어왔던 평화의 물결을 만들 수 있으면 된다. 아직도 제 눈앞에는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소녀상을 철거하지 못하도록, 2015한일합의를 우리가 번복하겠다, 우리가 파기하겠다고 하면서 모였던 시민들의 모임을 집회를 잊을 수가 없다.

 

대학생들은 그곳에서 철야를 했고, 그 추운 날 비닐천막을 뒤집어 쓰고 소녀상을 지켜냈고, 수요일만 되면 수천 명의 어린아이부터 시민들, 해외에서도 노란나비를 들고 수많은 사람들이 평화로를 만들었다. 이제는 평화세력들이 더 이상 SNS 안에서의 개인 행동을 넘어서서 거리로 나와야 할 때다. 평화로에 모였던 시민들이 2015합의를 실질적으로 무효화 시키고, 그 다음에 들어선 문재인정부로부터 사과를 받아내고, 화해치유재단도 해산시켜고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라던 2015한일합의는 해결책이 아니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하게 했던 그 기억이 우리에게 희망의 상징이다.

 

수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해서도 수원시민들을 넘어 서서 전국 각지의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기 원하는 분들, 평화를 꿈꾸는 분들이 소녀상을 둘러싸고 평화의 띠를 만들어 연대한다면 지켜낼 수 있다. 지금은 거리로 나와서 함께 연대할 때다. 연대가 희망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에 늘 관심을 가져온 것으로 안다. 왜 정권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막고 있다고 보나? 현재 이태원 특별법의 상황은?

 

“사실 명확하게 지금 윤석열 정부의 책임자들이 이태원 참사의 가해자들이고 처벌받아야 할 대상이다. 그런데, 그것이 이뤄지지 않는 건 검찰공화국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검사집단은 범죄자를 특정하고 기소하고, 그리고 끝까지 유죄라고 주장한다. 재판에서 무죄로 판결이 나도 사과하거나 번복하지 않는 집단이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부터 행안부, 국회의원도 국민의힘 안에도 검찰 출신들이 대거 등용돼있는 상태다.

 

행안부장관 조차 사과하지 않고 처벌받지 않았고, 대통령도 반성하거나 재발 방지를 위한 어떠한 약속도 하지 않고, 여전히 진실규명이 되지 않은 상태다. 왜 죽어갔는지. 그래서 부모들은 거리에서 삼보일배를 하고, 한겨울 수염에 땀이 맺혀 얼음이 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국회 본회의장에서 법이 통과되길 바라면서 눈물로 호소하던 가족들의 모습도 잊혀지지 않는다.

 

지난 1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태원참사 진상규명특별법이 통과됐다. 국민의힘이 나간 상태에서 야당 단독으로. 아니나 다를까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거부권은 대통령의 권한을, 대통령의 책임을 위배하는 것이라는 국민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또 이태원참사 진상규명특별법이 통과돼야 한다는 국민대다수 여론이 형성돼 있었음에도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본회의에 재의가 요청돼있는 상태이고, 총선 전에 마지막 본회의에서 이것을 다룰 것으로 기대했는데, 결국 발의되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국민들이 어떤 힘을 발휘하느냐, 총선에서 야당이 얼마나 압도적으로 승리하느냐에 따라 법도 통과돼 유가족들의 눈물을 국회가 국민들이 닦아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주말마다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실현을 위해 촛불집회에 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시민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저는 촛불집회에 나가서 촛불 시민들에게 너무나 큰 위로와 격려를 받고 있다고 늘 고백을 한다. 정말 감동이다. 70, 80, 90이 넘은 어르신들이 보행기에 몸을 지탱해 피켓을 담아서 행진하며 시민들에게 ‘윤석열 탄핵, 김견희 특검만이 지금 우리나라를 다시 살릴 수 있는 길이다’ 외치는 분들을 만나기도 한다.

 

또 무릎이 안좋아서 불편한 걸음걸이로 끝까지 행진하면서 구호를 외치면서 ‘지금 윤석열을 탄핵하지 않으면 민생파탄, 한일과거사의 굴정,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등등 어느 하나도 제대로 살려 낼 수 없다’는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을 만나고 있다.

 

저는 더 많은 정치인들이 국회의원들이 현장 속에서 시민들의 절규를 듣고 ‘아, 국회의원들이 바로 이런 것을 해야되는 구나’하는 것을 배웠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토요일마다 한다. 앞으로는 국민들이 그렇게 절규하지 않아도, 추운 겨울, 무더운 여름을 거리에서 맞지 않아도 되는 정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생각을 촛불집회 현장에서 한다.”

 

 

2024년 4.10총선이 한 달여 남았다. 유권자의 판단은 어떠해야 하나?

 

“최근에 한 정당이 새로 창당하면서 ‘3년은 너무 길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저는 ‘3년은 너무 길다’이 말조차도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경제, 안보, 남북관계, 밥상 물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의 문제, 어느 것 하나 편하게 하루하루 숨쉬고 살아가고 있는가, 안녕하신가 하는 얘기를 계속하고 있다. 촛불집회 현장에서 만나는 시민들이 그런 목소리를 늘 들려주고 있다.

 

민생은 파탄 났고, 남북관계는 악화 됐고, 전쟁 위협 속에 있으며,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 대통령 부인의 부도덕한 일들이 늘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러한 윤석열 정부의 실정에 쓴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입틀막하고, 검찰권력을 동원해 탄압하는 검찰독재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2024년 22대 총선을 우리가 앞두고 있다.

 

22대 총선은 윤석열 정부를 심판하는 조기에 종식시키고, 심판할 수 있는 선거여야 된다. 그래야 그나마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켜 세워서 국제사회에서 신망받는 대한민국, 경제적으로 밥상 물가에서도 학교와 일터에서 안심하며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바라건대 야권은 조금 다름을 넘어서서 총단결해서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는 총선을 만들어야 한다. 국민들은 어떻게 하면 내일의 우리 삶을 민주적으로, 개혁적으로 안전하게 만들 정당에 투표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점을 실천과 행동으로 보여주셨으면 한다.

 

‘투표해 봤자 소용없다’는 생각을 갖고 계신다면, ‘투표는 나의 권리’라는 인식으로 투표장에 나가서 나가 뽑고 싶은, 우리나라를 제대로 세울 정치인은 선택해 주셨으면 한다.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다. 그 꽃을 우리가 맛볼 수 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지금 21대 국회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 단 하루가 남더라도, 국민들이 왜 저를 국회에 보내주셨는지 그 과제, 그 뜻을 잊지 않겠다. 마지막 그날까지도 저에게 주어진 입법의 의무, 정부 정책을 감시하고 관리하는 책임, 현장 목소리를 담아 국회에 법으로 정책으로 이루게 하는 의무를 다할 생각이다.

 

또한 정의를 실현시키고, 한일의 잘못된 역사를 올바르게 구현해 내고, 지난 과거 역사 속에서 억울하게 아픔을 겪었던, 전쟁으로 고통을 겪었던 분들에게 인권이 올바르게 실현되고, 분단으로 인해서 지금도 피해를 보고 있는 분들에게 국가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제대로 사과받고 배상받을 수 있는 사회,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입고, 민간인학살 피해를 입었던 수많은 분들에게 제대로 사과하는 한국사회, 나아가서 다시는 억울한 일을 당하는 그런 정치시스템들이 없도록 변화를 거듭해 가는 한국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온몸을 바쳐서 열심히 살아갈 생각이다. 그 길에 윤미향의 진심이 함께 담겨 있다는 걸 기억해 주시고 또 제 진심을 알아주시길 부탁드리겠다.

 

저는 검찰과 언론이 지난 3년 동안 저를 공격했듯이 위안부 피해자들을 이용해서 사리사욕을 채우려 했던 사람이 절대 아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위안부 피해자들이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가해자였던 일본정부에게 사죄와 배상을 받아 낼 수 있을까, 그 하나의 꿈을 가지고 30년을 살아왔다.

 

28살 아직 어린 청년이었지만 그때부터 시작해서 30여 년, 아마 사리사욕을 채우고자 했다면 다른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도 거리에 서서 할머니들과 함께 ‘나비의 꿈’을 꾸고 싶은 것은 제 심장에 남겨주신 할머니들의 용기, 그 희망, 그 꿈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혹시 여러분들도 위안부 피해자들과 함께 손을 잡고 싶다는 분이 계시다면 제가 언제든지 달려가 할머니들의 이야기 전해드리고, 함께 손잡고, 참 해방의 길을 만들어가고 싶다.”

 

한편, 윤미향 의원은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중학생 때 목사가 되기를 희망해 한신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했으며,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기독교학과와 사회복지대학원에서 공부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 일본 남성들의 한국 ‘기생관광’ 문제를 접하고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알게 됐다. 1990년 11월 16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결성되고,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 기자회견을 통해 피해자의 생존이 확인됐다. 1992년 1월 정대협 간사로 활동을 시작한 후 사무국장, 사무처장, 상임대표를 역임하며 30여 년 동안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살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