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앞에 선 수원특례시의회, 조례는 가결됐지만 ‘정치적 형평성’ 논란은 남았다


11일, 제404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정회 후 투표로 '수원시 10·29 이태원참사 희생자 추모 및 피해자 지원을 위한 조례안' 가결 결정

 

(한국글로벌뉴스 -박소연 기자)수원특례시의회가 ‘10·29 이태원참사 희생자 추모 및 피해자 지원을 위한 조례안’을 둘러싸고 상당한 진통을 겪은 끝에 조례안을 가결했다.

 

이번 조례 제정은 참사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한 지방정부 차원의 지원과 추모, 2차 피해 방지 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같은 상임위원회에서 함께 심사된 ‘12·29 무안공항 여객기 참사 희생자 추모 및 안전사회를 위한 조례안’이 부결되면서 정치적 형평성과 조례 심사의 일관성을 둘러싼 논란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번 논쟁의 핵심은 특정 참사에 대한 지원 자체가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다. 참사 피해자를 지원해야 한다는 데에는 정치적 입장을 떠나 공감대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지방의회가 유사한 사회적 참사를 바라보는 기준을 어떻게 세우고, 그 기준을 얼마나 일관되게 적용하느냐에 있다.

 

조인희 수원시의원은 조례안 제안 취지를 피해자에 대한 상담과 치료를 연결하고, 지역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2차 피해를 예방하며 중앙정부와 특별조사위원회 사이에서 피해자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조 의원은 특히 이번 조례가 특정 시민단체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참사 앞에서 지방정부와 의회가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책임과 인간적인 도리라고 호소했다. 국회가 피해자 지원을 위해 뜻을 모았던 것처럼 수원시의회 역시 정파를 넘어 시민의 안전과 피해자의 일상 회복에 힘을 모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조례의 취지만 놓고 보면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하다. 참사가 발생한 이후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일회성 지원만이 아니다. 상담과 치료, 지역사회에서의 보호, 2차 피해 예방, 추모와 기억의 공간 등 장기적인 회복을 위한 지방정부의 역할도 필요하다.

특히 국가적 재난이라고 하더라도 피해자가 거주하는 지역사회에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에는 지방정부의 역할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이번 조례가 갖는 의미는 분명하다.

 

그러나 조례 제정 과정에서는 다른 문제가 드러났다.

도시미래위원회 배지환 위원장은 본회의 발언을 통해 같은 날 심사된 무안공항 여객기 참사 관련 조례안은 부결되고 이태원 참사 관련 조례안은 통과되는 상황에 문제를 제기했다.

 

배 위원장은 이태원 참사 조례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전제하면서도 “누구의 생명은 더 중요하고, 누군가의 생명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냐”고 반문했다. 특히 참사 이후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무안공항 참사 유가족을 위로하고 진상규명을 위해 함께 연대해 온 사실을 언급하며 정치권이 오히려 피해자들을 갈라놓는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배 위원장이 제안한 방식은 두 조례를 함께 다시 심사하자는 것이었다. 어느 한쪽을 반대하기보다 양쪽 조례를 함께 검토해 통과시키는 것이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취지다.

 

이에 대해 김경례 환경안전위원장은 상임위원회가 두 참사의 경중을 비교해 심사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무안공항 참사 조례의 경우 수원 지역 내 피해자 유무와 사회적 합의 및 공감대 형성 여부, 조례 제정 시기의 적절성, 조례 명칭에 사용된 참사 명칭의 의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부결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태원 참사 조례 역시 관내 피해자 수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제정 필요성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국가적 재난에 대해 피해자의 숫자를 정책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신중해야 하며, 해당 조례는 특정 피해자 몇 명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권리 보장과 2차 피해 예방이라는 지방정부의 책무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사회적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무조건 별도의 조례를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원시가 관계 지방자치단체가 되고 의회가 재난 극복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필요성과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적극적으로 조례를 제정해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결국 양측의 주장은 서로 다른 지점에서 출발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피해자를 지원하고 참사가 반복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정치가 개입되는 순간이다.

지방의회는 시민을 대표하는 기관이지만 정당 정치가 작동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특히 참사와 같은 민감한 사안에서는 정책적 판단과 정당의 정치적 입장이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조례 논란 역시 조례의 내용 자체보다 심사 과정에서 정당 간 시각 차이가 표면화되면서 갈등이 커졌다는 점에서 수원시의회가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를 남겼다.

 

조례는 시민의 삶을 바꾸는 지방의회의 가장 중요한 입법 수단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조례를 만들고 폐기하는 과정에는 명확한 기준과 일관성이 요구된다.

 

특히 참사 피해자 지원과 같은 사안은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기보다 ‘누구를 지원할 것인가’보다 ‘어떤 원칙으로 지원할 것인가’를 먼저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에 이태원 참사 조례가 가결된 것은 피해자들의 권리와 지역사회 차원의 지원 체계를 제도화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수원시가 참사 피해자의 회복을 지원하고 추모와 안전의 가치를 제도적으로 담아냈다는 점도 평가할 부분이다.

반면 무안공항 참사 조례가 같은 과정에서 부결되면서 제기된 형평성 논란은 의회가 앞으로 설명하고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 상임위원회가 밝힌 ‘사회적 합의’와 ‘제정의 필요성’이라는 기준이 앞으로 다른 사회적 재난을 다룰 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논쟁이 정쟁으로도 개인의 감정으로도 끝나서는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참사의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권의 갈등이 아니라 실질적인 지원과 사회적 연대다. 의회 역시 조례 하나를 둘러싼 찬반을 넘어 어떤 기준으로 시민의 아픔을 제도적으로 보듬을 것인지 답해야 한다.

 

이번 조례안 가결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수원시의회가 이번 논란을 계기로 참사와 재난을 대하는 지방의회의 원칙을 마련하고, 정당과 진영을 넘어 피해자 지원에 대한 공통된 기준을 세운다면 이번 갈등도 의미 있는 정치적 과정으로 남을 수 있다.

 

반대로 참사의 종류와 정치적 입장에 따라 지원의 기준이 달라진다는 인상을 남긴다면 조례 제정의 취지마저 퇴색할 수 있다.

 

결국 시민들이 지방의회에 요구하는 것은 거창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다. 누구의 아픔이든 외면하지 않고, 같은 기준으로 바라보며, 필요할 때 먼저 움직이는 의회다.

 

이번 수원시의회의 조례 논쟁은 바로 그 기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지고 있다.

참사 앞에서 정치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며,지방의회는 어떤 원칙으로 시민의 아픔을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한 숙제는 남아 있는 현실에 부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