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와 미투, 그리고 피해자 보호


 

강간죄와 강제추행죄는 형법에서 종전에 친고죄로 규정되어 있었다. 친고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 어야 소추가 가능한 범죄이다. 모욕죄,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죄, 비밀침해죄, 업무상비밀누설죄 등이 이에 해당하는데, 피해자의 개인적인 사생활에 관련된 범죄들이 대부분이다. 이들 행위는 그 자체로 범죄에 해당하긴 하나, 피해자의 고소가 없는 경우에는 처벌할 수 없고, 피해자의 고소가 있는 경우 에도, 합의가 이루어져 고소를 취소하는 경우에는 역시 처벌할 수 없게 된다.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처벌이 좌우되다 보니, 폐해도 많았다. 피해자의 합의를 종용 내지 강요하는 가해자도 있었고, 합의 금 여부를 소유하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처벌이 좌우되는 문제도 있었으며, 한편으로는 합의금을 노 리는 소위 꽃뱀도 등장했다. 2012. 12. 18. 형법 개정으로 강간죄와 강제추행죄에 관한 친고죄조항이 완전히 삭제되었다.

필자는 대학에서 법학을 배우며, 변호사로써 살아온 그날까지, 성문제는 당사자 사이의 내밀한 내용 을 담은 것이어서, 피해자의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존중하는 취지에서 강간제 등에 대한 친고죄 규정 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었다. 친고죄가 폐지된 이후에서야, 강간과 강제추행이라는 범죄가 고소라 는 소추요건의 틀에 갇혀, 피해자들을 보호하는데 매우 부족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간, 강제추행 이라는 것이 얼마나 명백한 범죄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고죄의 한계로 인하여, 제대로 처단되지 못하고, 그로 인하여 그늘에서 응어리진 가슴으로 살아갔을 피해자가 얼마나 많았을까.

최근 “미투”운동이 거세게 일고 있다. 성과 권력은 하나로 뭉쳐져, 그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약자들 에게 성적인 강요를 일상화시켰다. 권력 앞에서 무기력하게 항거하지 못하고, 가슴에 한을 묻은 채 살아왔던 그 피해자들. 그 약자들이 이제 결연한 모습으로 당당하게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리고 있 다. 사적이고 비밀스런 이야기, 숨기고 싶고 알리고 싶지 않은 이야기, 그 은밀한 어둠 속에서, 범죄는 일상이 되었고, 피해자는 눈을 감아야 했으며, 괴물은 인간의 형상을 한 채, 권좌를 누렸다. 피해자들 의 고발은, 이제 세상과 어둠을 다시 되살피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성폭력은 엄연한 범죄이다. 범죄에 대해서는 마땅한 처단이 따라야 하고,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용서 를 구해야 옳다. 강도를 당한 사람에 비하여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봐왔던 시 절도 있었다. 아니 지금도 자유롭다고 보기 어렵다. 그 피해자들에 대하여, 우리는 무지했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아니 그들의 아픔을 무시하고 묵과했다. 성범죄의 진화는 우리가 피해자를 알아감에 다름아닌 듯하다. 이제 피의자의 인권을 넘어서, 피해자의 아픔을 보듬고 치유해줘야 하는 시대에 와 있다. 미투 운동을 둘러싼 여러 논쟁에 대하여, 어떠한 입장에 서더라도, 피해자에 대한 보호는 우선 시 되어야 한다. 정작 고통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감내하는 사람은 피해자이다. 사람들은 가해자 의 처벌에는 관심이 많으면서도, 피해자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더 나아가 피해자가 도움이 필요한 상태라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미투 운동이 구시대를 청산하는 신호탄이 되어주길 바라면서도, 정작 아픔을 딛고 고발에 나선 피해자를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 실제로 어떤 심리적, 물 리적 도움을 받고 있는지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그러나 정작 보호받아야 할 대상은 피해자이다. 부 디 이 운동이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지원의 필요성을 함께 알리는 계기가 되길 빌어본다.